대한민국, 아버지 세대의 심금을 울린 영화
영화 "국제시장"은 2014년에 개봉했으며, <해운대>를 연출한 윤제균 감독의 작품으로, 부산에 위치한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 영화는 특별하게 역순행적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영화가 흘러감에 따라 현재의 사건들을 다루다가 그 사건에 대한 과거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다시 현재로 돌아갔다를 반복하며 진행됩니다. 1950년대 6.25전쟁부터 흥남철수, 파독 광부, 간호사 그리고 베트남 전쟁, 이산가족 상봉까지의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현대사의 길이 남을 격변기를 살아온 산업화 세대인 가상의 인물 "덕수"를 주인공으로 그 시대를 이겨낸 아버지 세대들을 조명한 영화입니다. 주연배우로 황정민, 오달수, 조연 배우로 김윤진, 정진영, 장영남 등 실력과 높은 인지도를 겸비한 중견 배우들이 캐스팅되어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으며, 결과적으로 14,261,427명이라는 관객 수를 동원하여 국내 상영 영화 역대 4위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영화의 독특한 전개 방식
과거 산업화 세대의 이야기를 표현한다고 한다면, 1950년대를 영화의 시작으로, 현대를 영화의 끝으로 하는 보편적인 전개 방식으로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순서대로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 "국제시장"은 과거 굵직한 사건들의 순서는 지키면서, 전개 방식은 역순행적 구성을 취하기 때문에 어떤 사건에 대해서 현재의 "사건"이 발단이 되어 과거로 돌아가 정말로 보여주고 싶은 과거의"사건"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서사가 전개됩니다.
이별의 아픔과 영영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
영화의 첫 사건은 "흥남 철수"로 시작하는데, 먼저 70대의 노인이 된 주인공 "덕수"가 손녀와 같이 길을 걷다 손녀와 잡은 손을 놓치는 것을 발단으로 과거 시점으로 역행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10대의 덕수는 6.25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반도의 흥남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두 명의 여동생과 함께 넉넉하진 않지만 화목하게 지내고 있던 중,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연합군의 지속된 패배로 인해 전선은 점점 남쪽으로 밀리게 되고, 어느덧 함흥-흥남 일대를 제외한 함경도 전역이 중공군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끝내 원산마저 중공군에게 점령 당하면서 함경도 일대의 병력과 물자들이 포위 섬멸 당할 위기에 처하자 연합군은 1.4 후퇴, 즉 "흥남철수"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들과 중공군들에게 보복 당할 위험이 있는 이북 주민들이 자신들도 남쪽으로 데려가 달라고 청하게 되면서 흥남에 살던 덕수의 가족들도 피난길에 오르게 됩니다.
여기서 병력과 물자, 피난민들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은 모든 육로가 차단당했기에 해상 수송밖에는 방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선박에 실을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어떻게든 선박에 타기 위해 많은 피난민들과 덕수의 가족은 선박에 매달린 밧줄을 타고 오르며 승선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덕수는 등에 업고 있던 여동생 "막순"이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동생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덕수의 아버지 "진규"는 덕수에게 눈물을 머금은 채 "네가 이제부터 이 집안의 가장이다"라는 말을 하고 선박에서 내려 동생을 찾다가 끝내 선박에 오르지 못하게 됩니다.
덕수와 나머지 가족들은 처음으로 흥남을 떠나 부산이라는 타지로 와 고모가 운영하는 잡화점 "꽃분이네"로 향하게 됩니다. 덕수는 부산에서 천막 학교에도 다니고, "달구"를 친구로 사귀기도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지내기도 하지만, 어린 나이부터 구두닦이 등의 잡일로 가정에 도움이 되려 하는 등 부산에서의 삶에 적응해 나가는 한편, 어떻게든 가장이라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보려고 노력합니다. 여동생 막순이와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가던 중, "정전협정"이 채결되고,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되면서 덕수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조차 잃어버리게 됩니다.
나 자신과 꿈까지 등져야 했던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
현재로 돌아와 영화는 두 번째 사건으로 전개됩니다. 영화에서 다루는 두 번째 사건은 "서독 광부, 간호사 파견"과 "베트남 파병"사건으로, 노인의 덕수가 친구 달구와 같이 있던 중 부산의 젊은 학생들과 스리랑카인 커플들 사이의 언쟁을 중재하면서 학생들을 꾸짖는 것을 발단으로 과거 시점으로 역행하게 됩니다.
어느덧 청년이 된 덕수는 "선장"이라는 꿈을 가지곤 있지만 학비가 없기에 도강까지 해가며 공부하는 한편, 여전히 가난한 집안을 먹여살리기 위해 온갖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남동생 "승규"가 서울대에 합격하면서 대학 등록금과 학비 때문에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고, 친구 달구의 제안으로 서독 파견 광부 모집에 지원하게 됩니다.
그 시절 광부 업무는 소위 3D 업종으로 인프라가 매우 열악하고, 위험했으며, 극중 덕수와 달구가 실제로 갱도에 갇히는 사고를 겪으면서 극적으로 죽을 위기를 벗어나는 모습이 연출되는 등,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일과가 끝나고 나면 가족들과 자국을 생각하며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덕수는 서독 파견 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일생의 동반자인 "영자"를 만나게 되고 서독에서 돌아온 뒤 결혼하게 됩니다.
서독에서 일한 돈들로 남동생을 학교에 보내고, 집도 새로 얻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돈이 필요한 곳은 많았습니다. 막내 여동생인 끝순이는 결혼을 앞두고 많은 혼수 자금이 필요했으며, 고모가 죽자 고모부는 마음대로 잡화점 꽃분이네를 팔아버리면서, 가게를 지키고자 하는 덕수는 많은 돈을 들여 다시 가게를 인수해야 했습니다. 이때 덕수는 해양대학교에 합격하면서 자신의 오랜 꿈인 "선장"에 가까워진 상태였지만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부딪혀, 또다시 꿈을 접고 큰돈을 벌 수 있는 베트남 파병에 지원하게 됩니다.
전쟁터라고는 하지만 기술직에 지원한 것이기에 전쟁과는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게릴라전을 펼치는 베트남 전쟁의 특성상 전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통에서 덕수는 베트남 군인들에 의해 죽을 위기에 처한, 자신의 어린 시절 흥남 철수를 생각나게 하는, 원주민들을 부대원들과 함께 피신시키는 중에 물에 빠진 여자아이를 구하다가 다리에 총을 맞고 평생을 다리를 절며 사는 장애를 갖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죄책감과 너무 늦어버린 약속
다시 현재로 돌아와 영화는 마지막 피날레인 세 번째 사건으로 전개됩니다. 영화에서 다루는 세 번째 사건은 "이산가족 찾기 프로젝트" 사건으로, 노인의 덕수가 가족들과 있는 자리에서 이제는 가게를 팔고 쉬시라는 아들의 말에 역정을 내고 방으로 들어가, 어렸을 적 아버지와 헤어지면서 들었던 "꽃분이네에서 만나자"라는 말을 회상하는 것을 발단으로 과거 시점으로 역행합니다.
여동생의 결혼도 치르고 가게도 인수해 계속해서 운영하고 있던 덕수는 TV를 통해 한창 진행되던 "이산가족 찾기 프로젝트"를 접하게 되고, 이를 통해 어렸을 적 헤어졌던 아버지와 여동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덕수는 서울로 향하게 됩니다. 방송이 진행 중이던 서울의 방송국 주변에는 거리 곳곳마다 가족을 찾는 글과 그림이 걸려 있었고, 무수히 많은 사연들은 계속해서 방송을 타 퍼지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덕수는 아버지와 여동생을 찾는다는 사연을 올린 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과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카메라를 통해 만나게 됩니다. 아쉽게도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은 덕수의 아버지 "윤진규"가 아니었지만, 미국에 거주 중인 여동생으로 추정된 인물은 그의 여동생인 "윤막순"임이 밝혀졌습니다. 끝내 아버지는 찾지 못했지만 다시 찾게 된 여동생과 함께 영화의 현재로 돌아오게 됩니다.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의 제사를 지낸 뒤, 가족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몰라,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방안에 홀로 들어온 덕수는 벽에 걸린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며,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입 밖으로 내뱉습니다. 그리곤 애써 부정해 왔던, 이제는 아버지가 돌아와 "꽃분이네"에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채, 가게를 팔고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살고자 마음을 먹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국제시장"에 대한 주관적 총평
영화 "국제시장"은 "이 영화를 아버지께 바칩니다"라는 감독의 말로 짐작해 봤을 때, 어떤한 특정 계층을 타깃 하여 만든 영화이고, 이는 관객 전체에게 동조를 이끌어 내거나 감동, 교훈 등을 주기에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10대부터 30대 초반 정도까지의 세대들은 영화에서 비치는 주인공 "덕수"가 아버지 세대가 아닌 "할아버지" 세대인 경우가 많기에, 산업화 세대를 살아온 "아버지" 세대들을 조명한 영화라는 타이틀을 건 국제시장은 두 세대라는 큰 시간의 공백을 이기지 못하고 공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또한, 영화의 결말 부분인 "이산가족 찾기 프로젝트"에서 극단적인 감정 자극을 위한 반복성, 즉 신파가 너무 과장되게 연출된 것은 아닌가라는 평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같은 창작물을 제작할 때 모든 사람들에게 먹힐만한 주제를 통해 성공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형식이 있는 한편, 특정 계층에게 완벽하게 먹히는 주제를 통해 성공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형식 또한 있기 마련이고, 이는 전략적인 부분으로서, 영화를 얼마나 가치있게 만들 수 있는가에는 크게 기여하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각본이나 연출은 훌륭했다고 생각하며, 14,261,427명이라는 관객 수 또한 이에 대한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건의 특성에 따라 "감정 자극"은 필수적인 요소이고, 영화에 등장하는 감정 자극은 반복성을 띄기보다는 영화의 초반부터 여동생 "막순"이에게 하는 말, 찢어진 저고리 등, 어느 정도 기반을 다진, 맥락이 있는 것이었다고 생각하기에, 무조건 극단적으로 감정을 자극했다고 해서 신파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영화 국제시장이 역사적 관점에서 봤을 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마음속에 새기고 살아가는 전쟁과 분단, 경제 성장이라는 요소를 퀄리티 있는 연출을 통해, 영화라는 창작물로 많은 관객들에게 다시금 각인시켜 주었다는 점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영화에서 직접 다룬 근현대사들만큼이나 큼직한 다른 사건들은 왜 넣지 않았냐는 지적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물론 IMF 외환위기나 광주 민주화 운동 등, 다양한 많은 사건들이 있지만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에서는 타당하고 자연스러운 전개를 위해 덕수가 "겪을 수 없는 일"도 있기 마련입니다. 또한 다큐멘터리 형식이 아닌 영화이기에 러닝타임의 문제도 결합되어 더 많은 사건을 다룰 수도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덕수"라는 인물의 배경 설정을 통해 이 정도의 사건들을 영화 한 편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하며, 희생하는 것밖에 모르는, 가족들과 친해지는 법은 알지 못했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들의 이야기를 가상의 인물에 투영해 간접 체험해 봄으로써 그 세대들을 다시금 생각해 보고,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해주었다는 것에서 영화 "국제시장"은 웰메이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